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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구름태풍태양 (Eze Moa Re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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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 삶의 중요한 것들은 마치 농담처럼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듀오였던 두 사람의 나이 차이에서 출발한 사람12사람의 이름 속 ‘12’라는 키워드가 작업을 시작한 년도와 멤버의 집 층수, 생일과 맞아 떨어져 결국 이들의 음반 발매일이나 레코드의 크기를 결정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리믹스나 리메이크 혹은 커버나 오마주, 심지어 패러디나 매시업마저 우리는 그것이 대부분 원작이나 아티스트를 향한 애정이나 존경, 말하자면 필연으로 보이는 이유에서 출발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필연 이전의 최초 시작점에 어떤 우연과 이야기가 운명과 같이 끼어들었을지는 작가만 아는 일이다. 활동을 멈춘 사람12사람의 이 곡 ‘빗물구름태풍태양’을 8년 지나 다시 끄집어내 매만지는 Eze Moa의 뻔한 필연보다 추측할 수 없는 우연에 더 관심이 가는 까닭이다.

Eze Moa는 앞서 올해 3월에 싱글 ‘Expose’와 6월에 3곡짜리 EP «Concen»을 내놓은 신예 프로듀서다. 미니멀한 베이스 사운드와 하우스 그루브를 기조 삼은 음악과 함께 직접 제작한 커버 아트워크, 오디오 비주얼라이저를 통해 자신을 일부 내비쳤던 그는 세상에 ‘Eze Moa’를 소개할 다음 단서로 리믹스 음악을 택했다. 원곡 ‘빗물구름태풍태양’은 인디신에 나름 작은 파문을 일으킨 곡이다. 서늘한 전자음악이지만 그 다운 몽환적인 면모와 그 답지 않은 뜨겁고 낭만적인 온도가 교차하는 잘 빠진 인디팝이었다. 마니아들과 평단이 주목했고, 많은 이들의 염원 끝에 바이닐이 발매되었으며, 팬과 리스너들의 여전한 사랑으로 인해 중고 LP가 아직도 고가에 거래되는 음악이다. 이 곡을 낳은 사람12사람이 더는 활동하지 않기에 가치와 그리움이 더 크기도 하다. 그렇기에 선곡과 작업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추측했다. 그러나 적어도 완성된 곡만큼은 염려가 기우였다.

“비가 오는 동안에는 모든 사물이 과장되어 보이게 하는 어떤 어둠이 있다. 게다가 이 비는, 우리 몸을 얼마간 명상으로 인도하여 그 영혼을 보다 한없이 섬세하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친숙하게 말을 건넨다.” (18세기 프랑스 수필가 조셉 주베르) 기존의 ‘빗물구름태풍태양’이 구체적이고 묘사적인 음악과 난해하고 추상적인 가사 모두 외부의 날씨와 내면의 심상의 어우러짐에 대한 기막힌 은유임을 상기할 때 이는 결국 시시각각 변화하는 순간에 대한 정물화적 포착이다. 구름은 멀리서 관찰되고, 비와 태풍은 마주하고 맞부딪히며, 태양은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이들은 모두 빛과 공기, 물과 열기와 같은 근원적 물질의 무한대에 가까운 조합에 의해 폭넓은 감각과 감정으로 치환하고 분화되기에 어떤 순간을 포착하고, 어떻게 그것을 변조하는지는 Eze Moa의 몫이다. 2015년, 이 곡에 앞서 같은 곡을 리믹스한 박티(Bacty)의 버전이 비트와 댄스 그루브를 강조하고 색채를 보다 화사하게 바꾸었다면, 본작은 원곡의 의도와 분위기는 최대한 살리면서도, 질감과 서사를 섬세하게 건드린다. 보다 번지는 소리를 통해 촉촉한 수분감을, 선명한 메탈릭 글리치 사운드나 이글대는 보컬 차핑을 통해 까끌대는 이물감을 더하는 식이다. 중간중간 브레이크 파트를 더 삽입해 호흡에도 서사를 부여했다. 덕분에 강한 바람과 번개가 내리치는 순간 마냥 드문드문 섬광을 발하는 정열이 더욱 귀에 잘 띄게 되었으며, 한껏 눌러 붙어 가라 앉아있던 원곡의 한밤중 혹은 태풍 속 한낮의 심상은 보다 극적이고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새벽 내지는 초저녁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이 곡이 어떻게 리스너에게 닿았는지. 사람12사람의 원곡이 어떻게 Eze Moa에게 닿았는지 구체적인 우연은 미지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대로 남겨두는 편이 더 많은 즐거움과 상상의 여지를 준다. “자유가 속박되고, 행동이 정지됨에 따라서 의식이 발생하고 정서가 태어나며, 그것이 예술 등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변화, 생성, 흐름의 실재하는 자연 법칙을 느끼고 그것을 표현한 예술에 관심을 보인 베르그송의 말대로 변화 가능성이 속박된 양 완성되어 보였던 이 노래에서 다시금 의식을 새기고 감정을 피운 Eze Moa의 작업에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정병욱

Credits

  • Composed by 지음
  • Lyrics by 지음
  • Arranged by 은천, Eze Moa
  • Mixed by Eze Moa
  • Mastered by 권남우
  • Artwork Designed by 유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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